1886년 4월 10일 부활 주일에 인천항을 통해서 장로교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만해도 조선 땅은 황무한 땅, 우상이 난무한 땅, 아직은 미개한 땅이었습니다. 원래 언더우드는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가 인도 선교사로 가기 위해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한국 선교에 대한 보고를 했습니다. "한국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의해서 아직도 복음을 받지 않은 나라, 어둠에 싸여있는 나라다"라는 보고를 듣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한국 땅에 선교사를 보내 주시옵소서. 저는 인도로 가지만 한국 땅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옵소서." 이때 성령님께서 언더우드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언더우드야, 왜 네가 가지 않고 남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느냐 한국 선교사로 네가 갈 수 없느냐"라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는 그 때 이렇게 하나님께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는 처음으로 한국 땅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 유익도 없는 땅, 불편한 땅 기뻐할 것 없는 고통의 땅입니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사명 때문에 이 땅에 왔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불러 맡긴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무엇을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인생의 높은 목표나 이념이나 가치를 우리는 사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명(使命)이라는 글자 뜻대로 하면 '심부름 받은 생명'이란 뜻입니다. 또한 사명이란 ‘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사명을 감당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인간은 사명적 존재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12제자 중 가룟 유다가 죽고 나서 맛디아라는 새로운 사도를 세웁니다. 맛디아라는 사도를 세우는 것은 가룟 유다가 주신 사명을 버리고 제 길을 갔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행1:25절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가룟 유다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자 그 사명을 감당케 하려고 맛디아를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1:25절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하고서 맛디아를 세웁니다. 맛디아가 사도로 세워진 것은 맛디아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세워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사명 없이 주일날만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사명 없이 산다는 것은 마지막 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는 소리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잘 감당한 종들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인생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명입니다. 사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명이 없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의 무서운 태양, 맹수, 풍토병 등 죽음의 사선을 넘어가면서 어떻게 견딜 수 있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는 약속은 한 시도 잊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정말로 두려움이 없었느냐, 죽음이 무섭지 않느냐?" 이렇게 다시 물었을 때 그 때 그가 대답하기를 ‘주께서 내게 사명을 주시는 한, 내 생명을 거두지 않을 것을 내가 믿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주향한 교회로 부르심은 바로 이 사명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한 사명 안에서 서로 만났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