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은 어려서부터 비참한 생활을 하였고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17살 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이런 몰골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입니까?”라고 부르짖다가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번의 좌절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극한 좌절에 빠져 방바닥에 엎드려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 것도 없어요! 친구도, 집도, 휠체어도 아무 것도 없어요.” 하며 통곡할 때, 주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 쓰라.” 송명희 시인은 왼손에 조막 연필을 쥐고 울면서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시를 썼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너무나 엉뚱하신 말씀에 기가 막혀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공평해 보이지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잖아요!” 그러나 주님은 책망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쓰라.” 그리고 계속하여 써내려갔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그리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유명한 ‘나’ 라는 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를 읽으면서 울었고 주님께 감사를 회복하였습니다. 이 시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중에는 송명희 시인처럼 인생의 광야를 지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지난 전반기에 광야의 길을 걸은 분들이 있습니다. 광야에서 겪은 고난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의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오히려 광야로 인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붙들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광야 같은 세상을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여기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통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거에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려서 오늘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최대 실수는 과거를 회상하는 능력을 상실할 때입니다. 진짜 어려움은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릴 때입니다.
지난 전반기를 돌아볼 때 성도님들 중에는 어렵고 힘든 일만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오늘 아침 진정 감사의 기억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반기가 진정 복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감사의 기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내 삶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해야 합니다. 과거에 내게 행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해 승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옳습니다”라는 승복이 있을 때 감사가 터집니다. 그리고 감사를 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은 느낌과 상황입니다. 느낌과 상황을 의존하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나옵니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감사하겠다고 결단하고 감사조건을 발견해야 합니다. 감사는 느낌이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조건을 찾아 감사할 때에 감사가 우리의 습관이 되고, 우리의 인격이 되고,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자꾸 감사하다고 보면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사실 행복한 사람이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