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고 해부학 첫 실험 시간에 해부실로 들어갔다. 해부도구와 수술용 고무장갑 그리고 비닐로 된 앞치마에 흰 실험복까지 갖춰 입고 실험실의 문을 여니 거기에는 실험대마다 한구씩 모두 32구의 시체가 놓여 있다. 시체의 피부를 벗기는 것이 첫해부학 실험 시간의 과제였는데 그 작업을 하는 동안 그것이 단지 시체일 뿐 사람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 모형 배를 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착각과 함께 나의 뇌리를 스치며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었다. 그래, 이 사람들도 살아 있었을 때에는 모두 자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며 살았겠지, 돈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또 죄를 짓고자 하는 사악한 마음도 있었겠지. 그런데 이제 그들은 자신의 머리털조차 다 깎인 채 실험대에 누워 있다. 부끄러움도 없이 발가벗긴 채로 말이다.
이제는 옷이 아니라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잘리고 내장이 도려내지고 뼈가 추려지고 있다. 그것도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신출내기 의사지망생에 의해서 말이다. 이 아주머니의 얼굴에 평생 동안 발라졌던 화장품은 얼마어치나 되었을까? 저 아저씨는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만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만족을 얻었을까?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 자신과 이 시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단 말인가?
이 글에서 이 의대생은 시체해부 실습을 하며 실험대에 누워있는 시체와 자신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 없음을 절감한 것입니다. 자신의 칼에 의해 도려 지는 시체를 통해 언제가 시체로 드러누울 자신을 본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죽음의 인식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실존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통감하였고 그 바탕이 위에 생이 대해서 비로서 진지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치 집에 가있다고 했습니다.(전7:4)
사람들의 관심사는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죽어 가고 있고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원래 인생은 죽을 존재로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죄의 삯(대가)은 사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그러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간이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친히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사망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주가 되실 수 없습니다. 죄의 형벌에 관한 문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해결되었을지라도 인간의 죽음은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 참 생명과 영원한 생명으로의 부활이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음을 물론이요 참되고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누리게 된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은 우리 영생의 보증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장차 주님처럼 부활에 참예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는 옷이 아니라 피부가 벗겨지고 근육이 잘리고 내장이 도려내지고 뼈가 추려지고 있다. 그것도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한 신출내기 의사지망생에 의해서 말이다. 이 아주머니의 얼굴에 평생 동안 발라졌던 화장품은 얼마어치나 되었을까? 저 아저씨는 저 손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만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얼마만큼의 만족을 얻었을까?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 자신과 이 시체들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가? 그것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단 말인가?
이 글에서 이 의대생은 시체해부 실습을 하며 실험대에 누워있는 시체와 자신 사이에 실제로는 아무런 차이 없음을 절감한 것입니다. 자신의 칼에 의해 도려 지는 시체를 통해 언제가 시체로 드러누울 자신을 본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죽음의 인식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자신의 실존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그는 젊은 나이에 자신의 죽음을 통감하였고 그 바탕이 위에 생이 대해서 비로서 진지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치 집에 가있다고 했습니다.(전7:4)
사람들의 관심사는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인간은 죽어 가고 있고 또한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원래 인생은 죽을 존재로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죄의 삯(대가)은 사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 인간은 모두 죽습니다. 그러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인간이 받아야 할 죽음의 형벌을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친히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사망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죄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예수님 안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구주가 되실 수 없습니다. 죄의 형벌에 관한 문제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해결되었을지라도 인간의 죽음은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사흘째 되는 날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일시적으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영원한 부활, 참 생명과 영원한 생명으로의 부활이었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음을 물론이요 참되고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 누리게 된다. 전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은 우리 영생의 보증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장차 주님처럼 부활에 참예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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