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설교가 끝나고 그레이험 리 선교사가 사회하면서 회중에게 기도하자고 선포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기도를 시작하므로 그레이험 리가 “여러분이 다 이와같이 기도하기를 원하면 다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말하자 온 회중이 일제히 큰 소리로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정황은 실로 글로 적을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런 혼란도 없었고 도리어 심령과 심령이 호응하는 화음이 서리었고 기도를 올리고 싶은 충격을 억제할 수 없던 마음과 마음이 사귀는 마음의 교통이었다. 기도 소리는 마치 폭포수 소리와 같아서 기도의 대해호(大海湖)가 하나님의 보좌로 밀어 올라가는 듯했다.>
위의 내용은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사나이 사경회를 목격한 블레어 선교사의 증언입니다. 바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 사경회에서 한국 교회 부흥운동이 시작됩니다. 교회 사학자들은 이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 사경회를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사경회에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재현된 듯 하였습니다.
이 부흥 사경회는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4개의 장로교 선교회가 연합으로 모였는데 저녁집회는 1500명의 참석하여 모든 사람들이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했습니다. 특히 첫날 저녁 건너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회중은 약속이나 한 듯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때 있었던 부흥 사경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강력한 회개를 동반하였습니다. 이어서 블레어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 속에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나의 요리사는 회개를 하려고 애쓰며 그 가운데 거꾸러져 방 건너 쪽에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목사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지, 용서받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울고 또 울며 거의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때때로 회개의 고백 후에 모든 회중이 통성기도를 했다. 수백 명의 회중이 통성기도를 한 효과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회개의 고백 후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렸고 우리 모두 함께 울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모임은 기도와 고백과 눈물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이 부흥 사경회에서는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한결 같이 자신의 죄를 공중 앞에서 숨김없이 털어 놓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통성기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부흥 사경회의 역사로 부흥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으로, 1920년, 30년, 60년, 70년에도 계속 부흥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2년 이상 기다려온 부흥 사경회가 오늘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는 때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달 종교 인구 통계에서 개신교 인구만이 줄어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부흥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우리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주신 비전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6년도 교회의 지경을 넓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로 쓰임 받는 교회와 일꾼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개인도 영적 부흥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이번 부흥 사경회 기간 내내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역시 성령의 강력한 임재입니다. 이번 부흥 사경회가 주향한 교회의 대 부흥운동으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위의 내용은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사나이 사경회를 목격한 블레어 선교사의 증언입니다. 바로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부흥 사경회에서 한국 교회 부흥운동이 시작됩니다. 교회 사학자들은 이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 사경회를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사경회에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재현된 듯 하였습니다.
이 부흥 사경회는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4개의 장로교 선교회가 연합으로 모였는데 저녁집회는 1500명의 참석하여 모든 사람들이 영적 위기의식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을 간구했습니다. 특히 첫날 저녁 건너 한쪽에서 어떤 사람이 흐느끼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모든 회중은 약속이나 한 듯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 때 있었던 부흥 사경회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강력한 회개를 동반하였습니다. 이어서 블레어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 속에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나의 요리사는 회개를 하려고 애쓰며 그 가운데 거꾸러져 방 건너 쪽에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목사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지, 용서받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울고 또 울며 거의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때때로 회개의 고백 후에 모든 회중이 통성기도를 했다. 수백 명의 회중이 통성기도를 한 효과는 무어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회개의 고백 후에 그들은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트렸고 우리 모두 함께 울었다.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모임은 기도와 고백과 눈물로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다.>
이 부흥 사경회에서는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이 한결 같이 자신의 죄를 공중 앞에서 숨김없이 털어 놓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통성기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부흥 사경회의 역사로 부흥운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1909년 백만인 구령운동으로, 1920년, 30년, 60년, 70년에도 계속 부흥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도 그동안 2년 이상 기다려온 부흥 사경회가 오늘 저녁부터 시작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는 때라 더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달 종교 인구 통계에서 개신교 인구만이 줄어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부흥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적으로도 우리는 부흥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주신 비전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006년도 교회의 지경을 넓히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로 쓰임 받는 교회와 일꾼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과 개인도 영적 부흥과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힘으로도, 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이번 부흥 사경회 기간 내내 우리가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역시 성령의 강력한 임재입니다. 이번 부흥 사경회가 주향한 교회의 대 부흥운동으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