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주일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된 우리를 양육하시는 독수리 양육 방법이 생각납니다. 특히 요즘처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녀들을 망가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주님의 독수리 양육 방법이 생각납니다. 주님이 우리를 양육하시는 방법대로 우리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다면 분명 주님의 아들 딸들로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왕자 독수리는 훈련에 의해 나르는 존재가 됩니다. 신명기 31장 11절에 보면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과 같이’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혀 자는 자기 새끼를 깨웁니다. 아기 독수리의 시절 부모 독수리는 아기 독수리를 둥우리에서 먹이고 재우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날개 위에 업어 나르기를 시작합니다.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하늘을 나르는 훈련을 시작합니다. 보통 독수리의 집 둥우리는 높은 산정 가까운 비탈 언덕에 위치합니다. 어느 날 부모 독수리는 아기 독수리를 깨워 그의 안전의 상징인 둥우리에게 데리고나와 낭떨어지 비탈길에 섭니다. 그리고 바람불기를 기다렸다가 아기 독수리를 날개 위에서 떨쳐 내립니다.
아직 한번도 날아보지 못한 아기 독수리는 자기가 날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뜩여 봅니다. 한없이 공포 속에 하강하는 아기 독수리가 결정적인 위협에 처하기 전에 부모 독수리는 재빨리 아기 독수리 밑으로 하강하여 날개를 펴서 업고 다시 집으로 상승합니다. 몇 번씩 이런 훈련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아기 독수리는 저 무한한 하늘의 공간이 자기의 세상인 것을 깨닫고 나래를 펴 비상하는 하늘의 왕자와 공주로 자라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생각할 때 독수리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 이제 혼자 나를 수 있어, 다음에 우리는 네가 나르는 그 멋진 모습을 저 높은 곳에서 지켜 볼 것이야. 아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보내는 특별한 소리와 함께 네 비상도움을 요청하는 날개 짓을 하면 되는 거야. 아빠 엄마는 언제라도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너는 곧 너의 아기 독수리를 키우기 위해 우리를 당분간 잊어 버려도 될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다만 먼 후일 언젠가 우리가 다시 보고 싶으면 넌 저 광야의 골짜기로 내려오면 돼. 거기서 넌 너의 늙은 아빠 엄마 독수리를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아빠 엄마는 늙으면 더 이상 이 높은 곳에서 살 수 없거든. 하지만 그때에도 아빠 엄마 독수리는 너를 알아 보고 저 골짜기에서도 너의 멋진 비상을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 말과 함께 마침내 부모 독수리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자신들의 둥우리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를 사정없이 밖으로 밀쳐냅니다. 더 먼 곳으로 더 멀리 비상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부모 독수리는 허공을 가르는 큰 소리를 외칩니다. ‘그것 봐!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우리보다 더 멋지게 나는 거야!’ 그때 비로서 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의 왕자 임을 알게 됩니다.
자녀 양육의 진정한 결과는 그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사회로 들어갔을 때 그들이 어떻게 사느냐로 검증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자녀의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을 개발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그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떠나 보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도, 부모의 못다한 꿈을 이루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참된 부모는 아이들을 미련없이 떠나 보낼 수 있도록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먼저 독수리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혀 자는 자기 새끼를 깨웁니다. 아기 독수리의 시절 부모 독수리는 아기 독수리를 둥우리에서 먹이고 재우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날개 위에 업어 나르기를 시작합니다. 다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하늘을 나르는 훈련을 시작합니다. 보통 독수리의 집 둥우리는 높은 산정 가까운 비탈 언덕에 위치합니다. 어느 날 부모 독수리는 아기 독수리를 깨워 그의 안전의 상징인 둥우리에게 데리고나와 낭떨어지 비탈길에 섭니다. 그리고 바람불기를 기다렸다가 아기 독수리를 날개 위에서 떨쳐 내립니다.
아직 한번도 날아보지 못한 아기 독수리는 자기가 날수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뜩여 봅니다. 한없이 공포 속에 하강하는 아기 독수리가 결정적인 위협에 처하기 전에 부모 독수리는 재빨리 아기 독수리 밑으로 하강하여 날개를 펴서 업고 다시 집으로 상승합니다. 몇 번씩 이런 훈련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아기 독수리는 저 무한한 하늘의 공간이 자기의 세상인 것을 깨닫고 나래를 펴 비상하는 하늘의 왕자와 공주로 자라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생각할 때 독수리는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 이제 혼자 나를 수 있어, 다음에 우리는 네가 나르는 그 멋진 모습을 저 높은 곳에서 지켜 볼 것이야. 아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에게 보내는 특별한 소리와 함께 네 비상도움을 요청하는 날개 짓을 하면 되는 거야. 아빠 엄마는 언제라도 너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어. 하지만 너는 곧 너의 아기 독수리를 키우기 위해 우리를 당분간 잊어 버려도 될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이지. 다만 먼 후일 언젠가 우리가 다시 보고 싶으면 넌 저 광야의 골짜기로 내려오면 돼. 거기서 넌 너의 늙은 아빠 엄마 독수리를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아빠 엄마는 늙으면 더 이상 이 높은 곳에서 살 수 없거든. 하지만 그때에도 아빠 엄마 독수리는 너를 알아 보고 저 골짜기에서도 너의 멋진 비상을 응원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을 거야.’
그리고 이 말과 함께 마침내 부모 독수리는 그동안의 익숙했던 자신들의 둥우리를 해체하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아기 독수리를 사정없이 밖으로 밀쳐냅니다. 더 먼 곳으로 더 멀리 비상하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부모 독수리는 허공을 가르는 큰 소리를 외칩니다. ‘그것 봐!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우리보다 더 멋지게 나는 거야!’ 그때 비로서 독수리는 자신이 하늘의 왕자 임을 알게 됩니다.
자녀 양육의 진정한 결과는 그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사회로 들어갔을 때 그들이 어떻게 사느냐로 검증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자녀의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 재능을 개발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미래를 위해 준비하신 그 인생을 살아가도록 격려하고 떠나 보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도, 부모의 못다한 꿈을 이루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참된 부모는 아이들을 미련없이 떠나 보낼 수 있도록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