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경건 서적으로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란 책의 저자 로렌스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1611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십대 때 ‘30년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에 수도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학력 부족으로 수도사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이 55세 때, 간청 끝에 파리에 있는 카르멜 수도원에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로 수도원에 들어가 부엌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다리가 불편 했지만 비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수도사들의 식사를 해주면서 부엌을 작은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식사를 수도사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이 귀한 천사들을 섬기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리 하찮은 일도 사명감을 가지고 하면 소중한 일이 된다고 믿은 그는 반찬을 만들고 접시를 닦고 부엌 청소를 하는 것이 설교하는 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시장 보러 갈 때에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으며, 설거지를 하면서 "주님, 제가 그릇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심지어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성령의 불이 내 마음 속에 타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20년을 변함없이 감사로 기도하는 삶을 살자 수도사들은 점차 그를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수도원에서 원장을 뽑을 때 원장 후보조차 될 수 없었던 평신도 수도사인 그를 원장으로 추천합니다. 그리하여 로렌스는 수도원장이 됩니다. 그는 평생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문제가 있을 때만 하는 이미지로 남아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인생의 어려움이 있을 때에 기도합니다. 물론 기도는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 줍니다. 문제는 기도를 나에게 고통을 없게 하는 것, 닥치는 환난을 면케 해 달라는 정도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도의 삶은 그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여주는 삶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그의 자녀라면 당연히 아버지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으로 기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친히 하나님의 아들이셔서 기도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도 그는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예수님의 삶 자체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기도가 ‘열려라 참깨’식의 종교적 의식으로 전락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식의 미신으로 기도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신앙고백의 행위입니다. 이것은 응답을 받고 안 받고 이전의 문제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게 가장 먼저 하는 행위입니다. 기도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고 그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내주는 기도의 실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의 기도는 어디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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