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 년에 한 두차례는 선교사 훈련 때문에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지를 다녀오게 됩니다.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는 145명의 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양화진에 선교사 묘역이 들어서게 된 것은 1870년 최초로 존 헤론 선교사가 묻히면서 부터입니다. 양화진에 묻힌 선교사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면 마음에 아려오는 감동의 물결이 있습니다. 그 당시 조선 땅에 그들이 들어올 때는 정말 가난과 어둠에 있었던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알고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들고 이 환영하지도 않았던 이 땅을 찾아 왔습니다.
가서 제일 먼저 찾는 묘지가 최초로 묻혔던 존 헤론 선교사(John W. Heron 1858~1890)입니다. 그는 입국은 조금 늦게 했지만, 파송 받은 것으로 치면 최초의 조선 선교사입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의대 수석 졸업생으로 교수 자리까지 보장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조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약혼녀가 있었는데, 만류하다 못해 같이 선교사로 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로로 병에 걸려 5년 만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 알려져 눈에 띄는 선교사 묘지가 언더우드 선교사(HoraceG.Underwood1859~1916)와 아펜젤러 선교사(Appenzeller, Henry Gerhart 1852~1902) 묘지입니다. 두 분은 1885년 공식 선교사로는 최초로 제물포(인천) 항에 함께 도착하여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복음전도에 힘썼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세학당과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번역하며,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대를 이어 한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과 정동감리교회를 세웠으며 안타까운 것은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와 일본 상선이 충돌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감동을 주는 여성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바로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입니다. 그녀는 의료선교사였는데, 그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William James Hall 1860∼1894)와 그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며느리 메리안 홀(Marian Bottomley Hall 1896~1991) 등 온 가족이 양화진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홀 역시 의사였는데, 본래 중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제타가 조선으로 가버리자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꾸고 이듬 해 입국해서 결혼합니다. 제임스 홀은 그 후 서울에서 선교하다 평양으로 옮겨갔는데, 청일전쟁의 와중에 전염병에 감염되어 불과 입국 후 만 2년 만에 순교합니다. 아내 로제타와 아장아장 걷는 아들 셔우드, 그리고 아직 태중에 있던 딸 에디스를 두고 간 겁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유복자인 딸 에디스마저 세 살 때 풍토병으로 죽게 됩니다. 로제타가 그 딸을 남편의 무덤 옆에 묻고 어린 아들 셔우드를 끌어안은 채 드린 기도가 너무 놀랍습니다! “하나님, 저와 셔우드 홀은 이 땅에서 오래 오래 사역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사용해 주세요!” 이런 사연들은 끝이 없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이 민족의 오늘, 한국교회의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이 지금 이렇게 복음의 땅이 되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의 수고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19세기 말부터 수많은 선교사들이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렇게 와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학교를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주고 개화를 주도했습니다. 저는 양화진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복음의 채무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옵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에 빚진 자임을 기억하고 세계 선교와 전도에 헌신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가서 제일 먼저 찾는 묘지가 최초로 묻혔던 존 헤론 선교사(John W. Heron 1858~1890)입니다. 그는 입국은 조금 늦게 했지만, 파송 받은 것으로 치면 최초의 조선 선교사입니다. 그는 미국 테네시 의대 수석 졸업생으로 교수 자리까지 보장받은 엘리트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조선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약혼녀가 있었는데, 만류하다 못해 같이 선교사로 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로로 병에 걸려 5년 만에 죽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 알려져 눈에 띄는 선교사 묘지가 언더우드 선교사(HoraceG.Underwood1859~1916)와 아펜젤러 선교사(Appenzeller, Henry Gerhart 1852~1902) 묘지입니다. 두 분은 1885년 공식 선교사로는 최초로 제물포(인천) 항에 함께 도착하여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복음전도에 힘썼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연세학당과 새문안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번역하며, 그의 자손들이 4대까지 대를 이어 한국을 위해 일했습니다.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과 정동감리교회를 세웠으며 안타까운 것은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자회의에 참석하러 가던 중 군산 앞바다에서 그가 탄 배와 일본 상선이 충돌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감동을 주는 여성선교사 묘지가 있습니다. 바로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입니다. 그녀는 의료선교사였는데, 그 남편 제임스 홀 선교사(William James Hall 1860∼1894)와 그 아들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 며느리 메리안 홀(Marian Bottomley Hall 1896~1991) 등 온 가족이 양화진 묘지에 묻혀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 제임스 홀 역시 의사였는데, 본래 중국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제타가 조선으로 가버리자 선교지를 조선으로 바꾸고 이듬 해 입국해서 결혼합니다. 제임스 홀은 그 후 서울에서 선교하다 평양으로 옮겨갔는데, 청일전쟁의 와중에 전염병에 감염되어 불과 입국 후 만 2년 만에 순교합니다. 아내 로제타와 아장아장 걷는 아들 셔우드, 그리고 아직 태중에 있던 딸 에디스를 두고 간 겁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유복자인 딸 에디스마저 세 살 때 풍토병으로 죽게 됩니다. 로제타가 그 딸을 남편의 무덤 옆에 묻고 어린 아들 셔우드를 끌어안은 채 드린 기도가 너무 놀랍습니다! “하나님, 저와 셔우드 홀은 이 땅에서 오래 오래 사역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사용해 주세요!” 이런 사연들은 끝이 없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이 민족의 오늘, 한국교회의 오늘이 있게 된 것입니다.
한국이 지금 이렇게 복음의 땅이 되고 잘 살 수 있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땅을 찾아온 선교사들의 수고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19세기 말부터 수많은 선교사들이 구한말 쇄국정책으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 때 그렇게 와서 우리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학교를 세워주고 병원을 세워주고 개화를 주도했습니다. 저는 양화진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복음의 채무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돌아옵니다. 우리 모두가 복음에 빚진 자임을 기억하고 세계 선교와 전도에 헌신하는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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