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8-20] 스승을 따르는 열정이 있어야...

관리자 2008.05.18 08:50 조회 수 : 5894 추천:22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만,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보톨도 지오바니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입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이 되었을 때, 그는 보톨도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을 본 보톨도는 그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 기술만으로는 안된다. 너는 네 기술로써 무엇을 위하여 쓸 것인가 먼저 분명한 결정을 해야 된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나가서 두 곳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구경시켜준 곳은 바로 술집입니다. “스승님,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이 있어요.” “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을 위해서 이 조각을 사용했단다.” 이 스승은 다시 어린 미켈란젤로의 손을 잡고서 아주 거대한 성당으로 가서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아니면 저 술집 입구에 있는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똑같은 조각이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또 하나는 술 마시는 쾌락을 위해서 세워졌단다.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스승의 물음에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그 이후 미켈란제로는 그의 스승을 따라 그의 재능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냈습니다. 이처럼 참된 스승을 만나는 것은 제자에게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조선 시대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조지서(1454-1504)'와 '허침(1444-1505)'의 이야기는 참된 스승의 길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연산군의 스승이었던 그들은 같은 교육을 위해 참다운 스승의 길을 걸으면서도 그 방법에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감내한 고통과 인내는 질적으로는 같았습니다. 연산군 을 다루는 '조지서', 그는 날마다 공부는 하지 않고 사냥놀이나 일삼는 연산군을 성심껏 지도하고 타이르다 듣지 않을 때에는 책을 집어던지며 호되게 꾸중도 했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을 그는 주저 없이 한 것입니다. 그러니 연산군이 좋아할 리가 있었겠습니까? 반면 '허침'은 화가 나도 참으며 부드러운 말로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에 연산군이 하루는 요새로 치면 대자보를 붙였답니다. "조지서는 소인이고 허침은 성인이다." 나중에 '조지서'는 시골로 내려가 살다가 갑자사화 때 연산군에 의해 처형됐습니다. '허침'도 참사는 면했으나 역시 폭군을 길렀다는 자책감에서 말년에 피를 토하다 죽었답니다. 둘 다 참된 스승의 길을 걸었으나 잘못된 제자 때문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 입니다.이 경우은 미켈란젤로와 다르게 오히려 참된 스승은 있었으나 스승을 따르지 못한 제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실 우리에게는 신앙의 좋은 스승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스승을 만나려면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 좋은 스승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유산을 내 것으로 삼는 지혜와 열심히 필요합니다. 그들이 만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따른 것처럼,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른 것처럼, 디모데가 바울을 따른 것처럼... 인생에 있어서 참된 스승을 만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스승들의 신앙유산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열정은 더욱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