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언급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혼여행자는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연세대학교의 설립자인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부부다.
185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는 신학교를 졸업하자 재학 시절부터 꿈꿔 왔던 인도로의 선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의학을 비롯해 각종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선교사를 요청하고 있으나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하여 1885년 4월,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 후, 그는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강의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아원인 언더우드 학당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입국 1년 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문법》, 《한영자전》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렇게 활
발하게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888년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부임해 온 리사 홀턴을 만나게 되었고, 여덟 살 연상이었던 그녀에게 그녀가 좋아한다는 인동덩굴 꽃을 자주 선물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듬해인 1889년,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며, 결혼식 다음날, 우리나라 최초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언더우드 부부가 신혼여행지로 택한 곳은 압록강 내륙 지역. 이들은 평양과 강계, 의주를 거쳐 압록강 내륙 지역으로 9주간이나 신혼여행 겸 전도 여행 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는 선교 활동이 국법으로 금지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신혼여행은 ‘허니문’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건 ‘비터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더우드는 이때 한문 전도지로 복음을 전했으며, 부인인 홀턴은 환자를 치료해 주었는데, 그 숫자가 6백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당시 이 신혼부부를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구경꾼들이 밤만 되면 그들의 방문에 달라붙어 창호지에 침을 바르고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보았던 것. 이에 대해 홀턴은 “우리가 좀 쉬려고 해도 창문 구멍마다 우리를 쳐다보는 눈이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인가?”라고 말했다고.
그 후에도 이들은 새문안교회 설립, YMCA 조직,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설립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종교와 의료 사업뿐 아니라 교육,문화,정치계 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아들 원한경과 손자 원일한, 증손자 원한광 등 내리 4대가 120년 동안이나 한국 사랑을 실천했다. 1916년,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언더우드가 먼저 애틀랜틱시티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5년 뒤인 1921년, 부인 홀턴도 남대문 복숭아골에서 숨을 거두었다.
1999년 5월, 미국에서 이장되어 온 언더우드와 홀턴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함께 묻혔다.
- 어느 기업광고중에서...
185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한국명 원두우)는 신학교를 졸업하자 재학 시절부터 꿈꿔 왔던 인도로의 선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해 의학을 비롯해 각종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선교사를 요청하고 있으나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한국행을 결심하여 1885년 4월, 인천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 후, 그는 광혜원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강의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고아원인 언더우드 학당을 설립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입국 1년 만에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던 어학 실력을 바탕으로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 《한국어 문법》, 《한영자전》 등을 펴내기도 했다. 그렇게 활
발하게 활동을 전개하던 그는, 1888년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부임해 온 리사 홀턴을 만나게 되었고, 여덟 살 연상이었던 그녀에게 그녀가 좋아한다는 인동덩굴 꽃을 자주 선물하면서 사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듬해인 1889년, 둘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며, 결혼식 다음날, 우리나라 최초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언더우드 부부가 신혼여행지로 택한 곳은 압록강 내륙 지역. 이들은 평양과 강계, 의주를 거쳐 압록강 내륙 지역으로 9주간이나 신혼여행 겸 전도 여행 을 떠났다.
그러나 당시는 선교 활동이 국법으로 금지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신혼여행은 ‘허니문’이라기보다는 목숨을 건 ‘비터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언더우드는 이때 한문 전도지로 복음을 전했으며, 부인인 홀턴은 환자를 치료해 주었는데, 그 숫자가 6백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당시 이 신혼부부를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구경꾼들이 밤만 되면 그들의 방문에 달라붙어 창호지에 침을 바르고 구멍을 뚫어 안을 들여다보았던 것. 이에 대해 홀턴은 “우리가 좀 쉬려고 해도 창문 구멍마다 우리를 쳐다보는 눈이 있으니 이 얼마나 놀랄 만한 일인가?”라고 말했다고.
그 후에도 이들은 새문안교회 설립, YMCA 조직,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설립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종교와 의료 사업뿐 아니라 교육,문화,정치계 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이들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은 아들 원한경과 손자 원일한, 증손자 원한광 등 내리 4대가 120년 동안이나 한국 사랑을 실천했다. 1916년,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언더우드가 먼저 애틀랜틱시티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5년 뒤인 1921년, 부인 홀턴도 남대문 복숭아골에서 숨을 거두었다.
1999년 5월, 미국에서 이장되어 온 언더우드와 홀턴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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